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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

등록일 : 2019-02-27

1985년, 소고기고추장볶음 사건

 

각 구단이 국외에 스프링캠프를 차리고 전력 향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개인의 기량 발전은 물론이고 팀플레이를 점검하고 한 시즌을 버틸 체력 단련에 힘을 쏟는다. 

 

이 시기에 얼마큼 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그 해 팀 성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만큼 구단에서도 선수들의 숙식에 신경을 쓰고 있다. 

 

대개 일본에서 캠프를 차릴 때는 식사 비용으로 선수 한 명당 적지 않은 돈을 쓴다고 한다. 아침과 점심, 저녁, 그리고 야식까지. 과거에는 점심 식사는 연습 시간이 줄어든다고 대충 때우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뷔페식으로 식사를 준비해 선수들이 연습 사이에 양껏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B가 처음 국외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린 것은 1983년이었다. 대만 가오슝과 일본 미야자키에서 전지훈련을 펼쳤다. 1984년에는 이전에 쓴 것처럼 국외로 나가지 않고 창원에서 90일간의 모래바람과 싸우며 합숙 훈련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다시 국외로 나갔다. 일본 규슈 남쪽 끝에 있는 니치난에 캠프를 차렸다. 

 

다들 2년 만에 국외 전지훈련에 들뜬 마음이었다. 특히 프런트 직원은 어차피 입술이 부르틀 것이라면 국외에서 부르트는 게 낫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준비하고 출발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출발한 니치난 캠프. 숙소는 일본 우체국 산하의 보양 센터로 히로시마 카프 2군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시설도 깨끗했고 온천도 있어 선수들이 지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또 히로시마 전용 영양사가 배치돼 일본 프로야구 선수와 똑같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객실이 부족해 서너 명이 한방에서 자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끼니마다 다양한 식사가 나왔지만 30일 정도 지나니까 다들 입에 물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구단과 선수가 서울에서 가져온 김치와 고추장, 된장, 젓갈 등으로 입맛을 달래며 연습에 힘을 쏟았다.

 

 

 

그런 어느 날, 아침에 설사 환자가 발생했다. 그것을 보고받은 김성근 당시 감독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심 식사 전에 또다시 대여섯 명의 설사 환자가 나와 정상적인 연습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런데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숙소에서 파견된 일본인 직원이 그것을 보고 숙소 측에 알렸고, 숙소 측은 시청에 보고하면서 설사는 니치난시를 큰 걱정에 빠뜨렸다.

 

저녁 식사 전에 시보건소 방역 당국에서 연락이 왔다. 주방 등을 점검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가져온 음식도 일일이 열어봐야 하니까 책임자가 함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에 김 감독의 지시를 받은 필자가 숙소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 필자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주방에 도착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지금으로 치면 구제역 방역을 하듯 하얀 가운에 마스크를 쓴 시보건소 직원 일여덟 명이 모여 있었고, 숙소 측 직원들도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당시로는 생경한 장면에 필자의 마음도 불안에 휩싸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물어봤더니 설사 환자가 발생했으므로 숙소 측은 시청에 연락했고, 시청은 방역을 위해 조사하러 나온 것이다. 즉,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조사하는 시스템을 일본은 30여 년 전에 이미 갖추고 있었다. 

 

필자 역시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주방에 들어가자 보건소 직원들이 냉장고에 있는 선수들 음식을 하나씩 꺼내 검사하기 시작했다. 김치, 젓갈, 김, 고추장, 된장, 마늘장아찌 등 갖가지 음식물이 나왔다.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어느 고추장을 개봉했을 때 보건소 직원들이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딱히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위생 젓가락으로 안을 뒤져보더니 건더기 하나를 꺼내 검사 용기에 담았다. 고추장이니까 붉은색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거무스레한 덩어리였다. 그것을 깨끗하게 씻고 세세히 살펴보니 볶은 소고기였고, 역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설사의 주범은 소고기고추장볶음이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선수 약혼자가 정성껏 만든 것인데,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중 부패한 듯했다. 선수들은 고추장과 섞여 있으니까 밥에 비벼 먹을 때는 그 냄새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다. 

 

설사의 주범이 한국에서 가져온 상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숙소 측은 다소 안도하는 듯했다. 만약 숙소 측 음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영업 정지는 물론이고 평판도 나빠져 계속 영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설사 환자가 몇 명 더 나왔지만 음식물에 따른 장염이므로 지사제를 먹는 것으로 해결됐다.

 

이 내용은 김 감독에게 즉각 보고됐다. 저녁 미팅에서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물을 모두 꺼내 놓게끔 했다. 여러 음식물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는 아껴 먹으려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소고기고추장볶음도 몇 통 더 나왔다. 물론, 그것은 모두 폐기처분.

 

그런 해프닝을 겪기도 했지만 니치난을 떠올리면 야구장 더그아웃 벽에 쓰여 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가 있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오늘도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한 구슬땀. 그것이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구경백 사무총장은?

 

배명중-배명고-우석대 출신 내야수. 

 

1979년 동양 맥주 입사. 

 

1981년 OB베어스 창단에 기여. 

 

1982~1997년 OB베어스 매니저, 운영팀장, 홍보팀장, 스카우트 팀장 역임. 

 

1998년 해설위원 변신. 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2001년 스포츠서울 해설평론상 수상

 

2001~2010년 KBO 상벌위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술위원회 위원

 

2012년 KBO 100주년 사업위원  

 

현 (사) 일구회 사무총장. IB스포츠 해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