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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

등록일 : 2019-01-04

연봉 협상의 달인, 장호연

 

 

프로야구 연봉 시즌이다. FA(자유계약 선수) 제도가 도입된 후로는 거물 FA 선수의 대형 계약에 밀려 연봉 계약에 큰 관심이 쏠리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각 구단 운영팀은 연봉 계약 때문에 꽤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체계적인 연봉 사정표가 있는 데다가, 연봉 액수의 자릿수가 영이 하나 더 붙어 있으므로 큰 잡음 없이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제대로 된 연봉 사정표가 없었다. 안타 1점, 타점 1점, 도루 1점, 결승타 2점, 홈런 2점……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연봉을 책정했다. 당연히 대다수 선수가 구단 제시액을 받아들이지 않아 겨우내 지루한 연봉 협상이 이어졌다. 게다가, 그 금액도 지금처럼 큰 액수가 아니라 50만 원 안팎의 금액을 놓고 한 달 이상 끄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여기에 구단과 선수의 인식도 연봉 계약을 질질 끌게 되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의 연봉 인상 요인이 있는 선수가 있다고 하자. 선수는 자신이 바라는 금액이 1,000만 원 인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2,000만 원을 올려달라고 주장한다. 반면, 구단은 1,000만 원 인상 요인이 있지만 우선은 연봉 동결을 제시한다. 그 후 서로 만나 조금씩 금액을 좁혀 결국에는 1,000만 원이 인상된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고 악수한다.

 

 

 

다만 거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지루하게 길었다. 쓸데없는 샅바 싸움에 한 달 이상을 보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서로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했다면 그만큼 계약이 일찍 끝났을 텐데, 동네 시장에서 흥정하듯 서로 자존심(?) 싸움을 펼쳐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연봉 협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다른 선수와의 비교다. 

“어느 선수는 얼마를 받았는데, 혹은 다른 팀 누구는 얼마를 받았는데 나는 왜 이것밖에 받지 못하느냐?!” 그런 주장은 애교 수준이고, 때로는 “누구보다 10원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라며 막무가내로 버티는 선수도 있었다.

 

 

연봉이라는 것은 그해 팀 성적과 그 선수의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이듬해 팀 예산에 맞춰 책정된다. 그런데 선수나 구단이 모두 합리적이지는 않았다. 선수는 막무가내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구단은 계속 선수로 뛰려면 마지막에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버텼다.

 

그래도 프런트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코칭스태프가 결단을 내린 점이다. 매년 연봉 계약이 늦어져 제대로 동계 훈련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코치진이 연봉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선수는 동계 훈련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당시, 대개 동계훈련은 1월 10일~15일부터 시작됐으므로, 선수로서는 그 전에 연봉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그 결과, 대개 1월 초에는 연봉 계약이 마무리됐다. 다만 그사이는 물론이고, 계약한 이후로도 그 불협화음은 이어졌다. 왜냐하면, 연봉 계약에 대한 불만이 플레이로 이어질 때가 잦기 때문이다.

 

 

연봉 계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장호연 투수다. OB 유니폼을 입고 통산 109승을 올린 그는 연봉 계약에서 왜 자신이 이만큼 받아야 하는지 그 논리가 정연했다. 그 논리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프런트 직원이 있었을 정도다. 막무가내로 얼마를 달라고 주장하는 선수들 사이에 논리정연한 그의 주장은 지금 생각해도 신선했고, 프로다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서 프로야구에 제대로 된 연봉 사정표가 생긴 것은 1986년이다. 이해, 사노 요시유키 전 히로시마 코치가 OB 코치진에 합류했는데, 그가 히로시마 연봉 사정표를 전해줬다. 투수 부분, 타자 부분, 수비 부분, 주루 부분, 포수 부분 등 5가지로 구분해서 부분마다 세분화된 항목이 있는 연봉 사정표였다. 이것을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춰 OB만의 연봉 사정표를 만들어 선수단에 공표했는데, 그동안 주장했던 항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선수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연봉담당자도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할 수 있었고 선수들의 버티기도 상당수 줄어들었다.              ​ 

 

 

*구경백 사무총장은?

 

배명중-배명고-우석대 출신 내야수. 

 

1979년 동양 맥주 입사. 

 

1981년 OB베어스 창단에 기여. 

 

1982~1997년 OB베어스 매니저, 운영팀장, 홍보팀장, 스카우트 팀장 역임. 

 

1998년 해설위원 변신. 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2001년 스포츠서울 해설평론상 수상

 

2001~2010년 KBO 상벌위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술위원회 위원

 

2012년 KBO 100주년 사업위원  

 

현 (사) 일구회 사무총장. IB스포츠 해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