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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

등록일 : 2018-11-21

1982년 원년 우승 뒷이야기

 

 

두산은 KBO리그의 첫 장을 여는 기념비적인 우승을 차지하였다.

바로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전기 리그를 우승한 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을 물리치며 원년도 우승팀이 됐다.

한국시리즈의 결과는 4승 1무 1패로 일방적인 승리였지만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에는 대다수 야구 전문가가 삼성 우세를 예상할 정도로 불안 요소가 적지 않았다.

 

 

사실 당시 OB는 전기 리그를 우승한 데 이어 후기 리그도 우승해, 한국시리즈를 치르지 않는 통합 우승을 노렸다. 공교롭게도 후기 리그 마지막 날 상대는 삼성. 대구에서 열린 이 경기를 잡으면 후기리그도 우승할 수 있었는데, 연장 12회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게다가, 에이스인 불사조 박철순이 번트 수비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한국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또 주전 3루수인 양세종도 계단을 헛디뎌 골절상을 입어 한국시리즈에 나오기 어려웠다.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에이스와 주포가 부상으로 빠지게 돼, 당시 팀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가운데 대전에서 열린 1차전. 박철순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강철원이 빛나는 호투를 펼쳤지만 아쉽게도 15회 연장 끝에 3대 3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9회에 동점을 허용하며 1차전을 잡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어 대구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0대 9로 일방적인 패배.

게다가, 그날 밤 대구 수성호텔 앞 나이트클럽에서 일부 베테랑 선수와 대구 지역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하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지켜본 구단은 3차전이 열리는 서울에서는 합숙을 주장했다. 그러나 팀 분위기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판단한 코치진이 만류해 무마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이광환 당시 코치는 매니저인 필자를 항상 앞세워 베테랑 선수들을 술집으로 모두 모아게 했고 “한국시리즈에서 지면 내가 잘리니까 알아서 하라!”는 둥 ‘반협박 반읍소’ 작전을 펼쳤다. 이에 베테랑 선수들은 “우리가 한 두번 마셔봤냐 이정도 술 한잔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의기투합했고, 그것이 기적 같은 4연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징크스처럼 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이 코치가 베테랑 선수들을 이끌고 술집으로 향해 긴장을 푸는 정도로 가볍게 술잔을 마주쳤다. 

 

또 3차전부터 에이스 박철순도 출장해 팀 분위기는 더더욱 좋아졌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3차전부터 6차전까지 경기 전에 진통 완화 주사를 맞고 출장한 박철순의 투혼은 잊을 수 없다. 

 

결국, 선수단의 담합과 투혼이 있었기에 원년도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리즈 MVP는 6차전에서 만루 홈런을 때려낸 김유동이 탔는데, 부상으로는 맵시나 자동차를 받았다. 경기 전 낮잠을 자다 친구 4명과 함께 상갓집에서 절을 하는 꿈을 꾼 것이 현실로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에 김유동은 자동차를 팔아 친구들에게 한턱을 냈는데 찻값보다 술값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한국시리즈 내내 청계천에 있는 센트럴호텔에서 저녁 겸 사우나를 했는데, 6차전이 끝난 후에도 씻고 밥을 먹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곧바로 나이트클럽에 가서 축승회를 열자는 의견 일치를 봐 필자는 느닷없는 결정에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수들이 출발하기 5분 전에 리버사이드 나이트클럽 측과 연락이 닿는 촌극도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서는 윤동균과 김유동 등이 무대 위에서 김수희의 ‘너무 합니다’와 조영남의 ‘제비’ 등을 열창하고 놀러 온 손님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축승회를 즐긴 것이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다만 맥주 파티로 카펫이 젖어 그 세탁비를 내야 했다. 비용은 100만 원. 당시 자장면이나 짬뽕이 2-300원 정도 했으니까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비용뿐만이 아니라 축승회에 든 돈은 모두 구단이 아닌 박용곤 회장이 부탐했다. 

 

 

사실 그때는 프런트가 우승한 후에 어떻게 하자는 계획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시쳇말로 ‘설레발’이 될 수 있어 프런트 사이에서는 우승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정 탈지도 모른다는 조심성.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당시 나를 비롯한 프런트는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덧붙여서 당시에는 우승 반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구단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0주년이 되던 2011년 개막식에 맞춰 원년도 우승 반지를 제작해 당시 코치진을 비롯한 선수단과 필자에게 나눠줬다. 필자에게 그 반지는 보물 1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프런트 생활을 시작해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던 젊은 날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올해 두산은 아쉽게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은 달랠 길은 없지만 두산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강팀이라는 것은 변함없다고 생각한다. 한 시즌 수고한 선수단과 프런트, 그리고 팬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낸다. ​ 

 

 

*구경백 사무총장은?

배명중-배명고-우석대 출신 내야수. 

1979년 동양 맥주 입사. 

1981년 OB베어스 창단에 기여. 

1982~1997년 OB베어스 매니저, 운영팀장, 홍보팀장, 스카우트 팀장 역임. 

1998년 해설위원 변신. 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2001년 스포츠서울 해설평론상 수상

2001~2010년 KBO 상벌위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술위원회 위원

2012년 KBO 100주년 사업위원  

현 (사) 일구회 사무총장. IB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