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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

등록일 : 2019-04-12

1982년, 선수로 위장한 경호원

 

 

2019년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했다. 지난 3월 24일, 두산은 한화를 맞이한 잠실 홈 개막전에서 외국인 타자 페르난데스가 8회 2타점 2루타를 친 데 힘입어 5-4로 역전승을 거뒀다. 그 경기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 시구는 배우 김서형 씨가 맡았다. 그것을 보면서 필자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개막전을 떠올렸다.

 

동대문야구장(당시 명칭은 서울운동장)에서 MBC(현 LG)와 삼성이 맞대결을 펼쳤는데, MBC는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개막전다운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당시 야구팬들은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사실 개막전에서 MBC와 삼성이 맞대결을 펼치는 것은 이전부터 기획된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두산과 롯데 등이 특정 팀을 부각시키는 잘못된 경기 일정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프로야구의 개막전을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정이라는 KBO 책임자의 설득을 대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시구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대통령이 시구하는 만큼, 지금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우선은 개막식 예행연습이었다. 개막 전날 모든 선수가 동대문야구장에 모여 예행연습을 했다.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설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팀마다 입장하는 게 아니라 좌우 파울폴 뒷문에 한꺼번에 모여 있다가 “선수 입장”이라는 말과 함께 2루 부근에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까지 재빨리 뛰어나왔다. 그것을 두세 차례 실시하면서 선수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각 구단에 대통령이 시구하게 된다면 유니폼 두세 벌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이야 별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각 구단이 꽤 난감한 요구였다. 왜냐하면, 유니폼을 선수들 숫자에 딱 맞췄기에 여벌의 유니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곤란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는 날, 입장할 때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세퍼드(폭발물 탐지견) 두 마리를 버스 안으로 들여보내 냄새를 맡게하고 버스 밑 부분까지 경호원들이 들어가 샅샅이 검색하면서 선수단의 긴장감은 더욱 팽배해졌다.

 

검문 검색 절차를 마치자 경호원들은 구단 버스를 야구장 뒤편 정구장으로 유도했고, 경호원들의 지시가 있을 때 까지 선수단은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화장실이 급해도 경호원들의 위세에 눌려 말도 걸지 못할 정도였는데 구단 관계자는 대통령이 시구하러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보안검색이 까다로울지는 몰랐다. 

 

드디어 하차 지시를 받고 야구장으로 이동할 때 2-3명의 경호원들은 자신과 체격조건이 비슷한 각 구단의 코치와 선수를 은밀히 불러들였고, 유니폼을 벗게 한 다음 자신들이 갈아입은 후 태연하게 개막식에 참석했다. 

 

개막식 자료사진을 참고하면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생년월일 빠른 윤동균 선수가 선수 모두를 대표해 선서할 때, 그 뒤 첫 줄에 선 사람들은 선수가 아니라 선수 유니폼을 입은 경호원이었다. 경호원들에게 유니폼을 뺏긴 선수들은 버스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안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거나 속옷만 입고 개막 행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금이라면 언론매체는 물론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그때는 누구도 불만을 털어놓지도 못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구경백 사무총장은?

배명중-배명고-우석대 출신 내야수. 

1979년 동양 맥주 입사. 

1981년 OB베어스 창단에 기여. 

1982~1997년 OB베어스 매니저, 운영팀장, 홍보팀장, 스카우트 팀장 역임. 

1998년 해설위원 변신. 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2001년 스포츠서울 해설평론상 수상

2001~2010년 KBO 상벌위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술위원회 위원

2012년 KBO 100주년 사업위원  

현 (사) 일구회 사무총장. IB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