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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류지혁 선수

등록일 : 2018-12-28

2018년 류지혁의 일기

 

 

안녕하세요. 두산 베어스 류지혁입니다. 

 

블로그로 팬 여러분께 직접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올 한 해 동안 제가 느끼고 배운 점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두서없더라도 진심을 담아서 쓰려고 노력했으니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올해는 유독 짧게 느껴진 것 같아요. 2월 호주 스프링캠프부터 11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까지 10개월 정도 야구만 보고 달려왔는데요. 기간은 길었지만 '내가 한 게 없다'는 생각에 시즌이 정말 빨리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제 욕심처럼 되지 않은 시즌이었거든요. 

 

타격만 이야기하자면 정말 기대 이하였어요. 타격은 머리를 싸매고 해마다 고민하긴 하지만, 올해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오죽 안 됐으면, 연습을 하다 하다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럼 연습을 하지 말아보자' 하고 연습을 안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다시 또 방망이를 잡고 있더라고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요. 

 

 

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시즌 때 경기가 끝나면 백업 선수들은 대부분 남아서 특타를 해요. 저도 그렇고 경기 끝나고 훈련하는 선수들은 정말 힘들 거예요. 몸이 힘든 게 아니라 마음이요. 감독님과 코치님들께 보여줘야 하는데 안 나오니까. 남아서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면 저를 비롯한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감 안 좋은 형들이 같이해요. 강요해서 하는 게 아니고 본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니까 다들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올해는 생각이 정말 많았어요. 어떻게든 경기를 더 나가고 싶었는데, 경기를 더 뛰려면 내가 하는 플레이가 감독님 마음에 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죠. 올해는 감독님께서 믿고 써주셨을 때 못한 적이 정말 많았어요. 

 

 

한국시리즈 때는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큰 경기니까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죠.

 

2년 연속 홈에서 준우승을 했는데, 그래서 더 힘들고 아쉬웠어요. 당연히 아쉽죠. 아쉬운데 지금 와서 후회하면 늦은 거잖아요. 한국시리즈 끝나고 '2등은 못하겠다, 진짜로 2등은 죽어도 못하겠다' 이 생각만 들었어요. 팬분들도 많이 아쉬워 하셨고, 그래서 더 2등은 할 게 못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힘들었던 건 건우 형. 건우 형이 땅볼 치고 1루에서 쓰러져 있었을 때 제가 다 울뻔했어요. 제가 정말 눈물이 없는데, 건우 형이랑 룸메이트니까 고생한 거 정말 다 봤거든요. 눈물이 나는데 또 다 끝나고도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도 형 얼굴은 점점 안 좋아지지. 못하고 싶은 야구 선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팬분들 마음도 이해가 되니까, 그래서 마음이 진짜 아팠어요.

 

 

한국시리즈 끝나고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 와서는 '빨리 잊자'고 생각했어요. 2등 한 것을 기억하면서 운동을 하되 나쁜 것들은 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미야자키 와서는 타격만 생각했어요. 나쁜 습관들을 바꾸는 데만 집중하면서 코치님들이랑 오전, 오후, 야간으로 계속 훈련을 했어요. 감독님께서 한국에서 말씀해주신 것들을 고치려고 했는데, 길게 보고 있어요. 야구를 계속 오래 할 거니까. 길게 보고 꾸준히 하려고 해요. 방망이는 습관이 들면 한순간에 바뀌지 않더라고요.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건 타격할 때 준비 동작이에요. 치기 전까지 준비 동작이 너무 급했거든요. 늘 경기 끝나고 영상을 보면 안타를 치든 못 치든 준비 동작이 급해요. 상대 투수와 상관없이 준비 동작을 여유 있게 준비해서 치려고 했어요. 

 

이번 마무리 캠프는 집중해서 훈련한 것들을 점검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시즌 때 경기를 뛰면 폼 생각은 하면 안 되거든요. 폼 생각을 하는 순간 지는 건데, 여기서는 폼을 생각하면서 칠 수 있었어요. 청백전 뛸 때 여러 타이밍에서 준비를 하면서 타격을 해봤는데 정말 도움이 됐어요. 

 

미야자키 와서 깜짝 놀란 게 있었는데요. 내야수 중에서 제가 나이가 가장 많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형들이랑 있을 때는 늘 제가 물어보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후배들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당황했죠;; 

 

후배들이 물어보면 '미안한데, 형도 몰라'라고 먼저 대답하고 '너는 어떻게 하는데?'라고 물어봤어요. 그러면 애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다고 말해요. 그럼 또 제가 '야구에 정답은 없어, 너 편한 대로 하면 돼'라고 이야기해줬어요. 청춘 드라마 대사 같은데 진짜 그랬어요ㅎㅎ

 

 

저는 재호, 재원이 형한테 들은 게 많지만, 후배들한테는 나중에 1군 와서 형들에게 직접 묻고 들으라고 했어요. 제가 형들한테 들은 걸 전달하는 거랑 형들이 직접 들려주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거든요. 어쨌든 우리 팀 내야수면 톱은 재호, 재원이 형이잖아요. 나중에 제가 우리 팀 주전이 되면 그때는 제 생각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저도 배우는 입장이라 조언을 해주진 못했어요. 

 

후배들과 함께 뛰면서 '내가 지금 이 생각을 갖고 20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야구를 대하는 이 마음을 갖고 20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러면 조금 더 야구를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ㅎㅎ 마무리 캠프에서 후배들을 보면서 그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그래도 아직 스물 여섯 살이니까 기회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쉬지 않고 마무리 캠프까지 오니까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훈련 끝나고 숙소 들어오자마자 뻗어서 자요. 그러다 한국에서 전화 오면 깨죠. 아들이 아빠 찾는다고 몇 통씩 전화가 와요. 

 

아들 이름은 이현이에요. 제가 집에 자주 있지 못하니까 영상 통화를 하면 휴대전화를 가리키면서 '아빠 아빠' 해요. 이제 아빠, 엄마, 맘마, 까까(과자), 주뜨(주스), 띠드(치즈)는 말할 줄 알아요. 밖에 나와 있으면 이현이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요. 비시즌에 한국에서 쉴 때 아들이랑 많이 놀아주려고요. 

 

올해는 제 마음처럼 안된 시즌이기도 하고, 팀도 준우승을 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데요. 다음 시즌에는 팀이 우승할 수 있게 더욱 성장해서 돌아오는 류지혁이 되겠습니다.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추워졌으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류지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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