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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재국 기자

등록일 : 2018-11-23

[이재국의 베팬알백] <9편> ‘불사조’ 박철순, 7전8기 악몽의 시작

 

"나는 발버둥 쳤다. 이대로 떠나지는 않겠다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려 깊게 생각해서 잘 정리해 보니 그게 좋겠다고 판단을 해서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나는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를 외치면서. ‘시련아! 이제 내게서 멀어져라’ 하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언덕이 있을 때마다 나는 몸을 끌고서라도 넘으려 했다. 쉽게 야구를 포기하는 후배들. 매년 떠나가는 사람들. 한번쯤 죽을힘을 다해서 해 보고 떠나도 떠났으면 좋겠다. ‘고통이여 와라’ 하고 모두 떠나간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진정한 스포츠맨만이 두 발을 딛고 설 자격이 있다. 최소한 나의 기준은 그렇다."

 

1995년 나온 박철순 자전 에세이 (혼(魂)을 던지는 남자)에 나오는 대목이다.

 

‘불사조’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인물. 박철순은 원년 22연승과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MVP로 기록되면서 동시에 ‘불굴의 의지’와 ‘재기의 화신’으로 기억된다. 수없이 반복된 허리 부상과 수술, 아킬레스건 파열…. 운동선수가 아니라 일반인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지 모르는 대수술을 거듭했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쓰러지면 또 부활하는 그의 모습에 초창기 프로야구 팬들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다. ‘불사조’라는 별명을 듣노라면 오히려 처연함과 숙연함이 밀려들었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할 100가지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는 박철순이 처음으로 쓰러진 가슴 아픈 시련의 순간이다. ‘불사조’ 스토리가 시작된 첫 장이기도 하지만, OB 구단과 프로야구 전체의 역사가 얽히고설킨 순간이기도 했다.

 

 

●원년 한국시리즈를 없애자!

프로야구 출범 첫해인 1982년은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는 시스템이었다. 전기리그 우승팀이 후기리그 우승까지 성공한다면 한국시리즈는 무산되고 통합우승으로 싱겁게 챔피언이 가려지는 제도였지만, 누구도 그럴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을 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런데 OB가 그 예상 밖의 시나리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OB는 전기리그에서 4경기를 앞두고 우승을 확정하면서 29승11패(승률 0.725)로 마감했다. 2위 삼성(26승14패)에 3게임차 앞섰다.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확보한 OB로서는 사실 후기리그에는 큰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꼴찌를 하더라도 한국시리즈에는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리하지 않고 일찌감치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전력을 재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당초 기껏해야 6개 구단 중 3~4위권 전력으로 평가받던 OB였기에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전기리그에서만 18연승을 포함해 팀의 27승 중 19승을 책임진 박철순을 한 달 이상(6월 26일 전기리그 마지막 등판 이후 후기리그 7월 31일 첫 등판) 쉬게 했다. 한 술 더 떠 구단의 배려 속에 김영덕 감독은 후기리그가 한창 진행되던 8월에 보름가량 선진야구를 배우기 위해 지휘봉을 김성근 코치에게 잠시 맡긴 뒤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비우면 채워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는 노자의 ‘무위(無爲)’ 철학처럼, OB는 마음을 비웠지만 후기리그에서도 승수는 도리어 채워져나갔다. 막바지에 삼성과 후기리그 1~2위를 다투는 상황에 이르더니 1위로 치고 나갔다. OB는 9월 26일 해태를 7-1로 꺾고 후기리그 27승11패의 전적을 올렸다. 그런데 이날 삼성이 MBC에 0-7로 덜미를 잡히면서 25승12패를 기록해 선두 OB는 1.5게임차로 앞서나갔다.

 

OB의 남은 경기수는 단 2경기. 9월 28일 동대문 MBC전과 29일 대구 삼성전 1게임씩이었다. MBC를 이기고 삼성에 지더라도 최소 공동선두를 확보하게 됐다. 삼성은 남은 3경기(삼미, OB, MBC)를 모두 이기고, OB와 후기 우승 결정전(3전2선승제)까지 이겨야 한국시리즈에 오를 수 있었다. 반대로 OB가 MBC에 지더라도 삼성만 잡는다면 후기리그 우승을 확정하면서 통합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원년 한국시리즈를 없애는 것이었다.

 

9월 23일 해태전 승리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에이스 박철순을 28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리는 MBC전에 투입하느냐, 29일 대구구장에 예정된 최종 삼성전에 투입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답은 뻔했다. OB 수뇌부는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이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9월 28일 서울에서 MBC전이 열렸지만 박철순은 하루 먼저 홀로 대구에 내려가 삼성전을 대비했다. OB는 이날 MBC에 0-7로 완패했고, 삼성은 대구에서 삼미를 9-4로 꺾었다. 양팀간의 격차는 0.5게임으로 다시 좁혀졌다.

 

 

●9월 29 삼성전 번트 수비, 불행을 잉태하다

9월 29일 대구구장.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OB는 절대 에이스 박철순 카드 하나였지만, 삼성은 권영호를 비롯해 황규봉(고인) 이선희 등 15승을 올리며 다승 공동 2위에 오른 트로이카를 보유하고 있었다.

 

OB의 박철순에 맞서 삼성은 좌완 에이스 권영호를 선발로 투입했다. 초반에 양 팀은 득점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역으로 보면 양 팀 에이스들의 빼어난 경기운영이 돋보였다. 0-0의 팽팽한 균형을 먼저 깬 것은 OB였다. 6회초 백전노장 김우열의 솔로홈런으로 1-0 리드를 잡았다. 그러자 삼성은 7회말 천보성과 김한근의 연속 2루타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OB는 박철순이 홀로 마운드에서 버텼고, 카드가 다양한 삼성은 7회부터 우완 에이스 황규봉으로 교체해 박철순에 대항해 나가고 있었다.

 

운명의 8회말. 삼성은 무사 1루 찬스를 잡고 오대석에게 희생번트 작전을 펼쳤다. 이때 재빨리 번트타구를 처리하던 박철순에게 시련의 신호가 찾아왔다.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한 것. 허리에 통증이 밀려왔지만 경기가 경기인 만큼 박철순은 이를 악물고 투구를 이어갔다. 실점 없이 8회를 넘겼고, 9회까지 양 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연장 12회말. 박철순은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지만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1사 후 2번타자 허규옥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2사 후 4번타자 이만수에게 좌전안타를 내주면서 1·3루 위기에 몰렸다. 이어 5번타자 함학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함학수가 친 땅볼 타구는 3루수 양세종과 유격수 유지훤 사이로 얄밉게 뚫고 나가면서 끝내기 안타가 되고 말았다. 삼성의 2-1 승리. 2위 삼성이 0.5게임차로 1위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황규봉이 시즌 15승째를 수확했고, 박철순은 11.2이닝 역투를 펼쳤지만 완투패로 시즌 4패째를 떠안았다.

 

 

OB는 이날 경기로 후기리그를 마감했다. 삼성이 10월 2일 시즌 최종전에서 MBC에 패하면 동률이 되면서 우승 결정전이 치러져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후기리그 자력 우승이 물 건너간 OB로서는 앉아서 그런 행운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삼성이 MBC전에서 5회초 이종도에게 선제 솔로홈런을 맞을 때만 해도 ‘혹시나’ 했지만 결국 삼성이 3-1로 역전승하면서 후기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원년 한국시리즈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박철순이 9월 29일 삼성전 8회말 번트 수비 후 허리를 삐끗했을 때 교체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후기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허리 부상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요즘이야 선수 보호를 우선시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선 팀 앞에, 승리 앞에 선수는 누구나 투혼을 불살라야 했다. 연간 80경기를 치른 원년에 박철순은 홀로 36경기에 등판해 224.2이닝을 던졌다. 그땐 박철순이 아니더라도 에이스라면 누구나 그렇게 던졌던 시절이다.

 

박철순은 이날 연장 12회 4시간 7분의 혈투를 치른 뒤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비로소 통증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화장실에 기어들어갈 만큼 허리 통증이 극심해지자 서울로 후송됐고, 급기야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이 박철순의 허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물었지만 OB 구단은 일단 “가벼운 요통일 뿐”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박철순은 그해 추석(10월 1일)은 물론 그 이후에도 꼼짝을 하지 못하고 병원 침대에 신세를 져야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10월 5일. 박철순의 허리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선수에게나 OB 구단에게나 절망적인 상황.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내세울 선발투수가 마땅하지 않은 OB로서는 한숨만 나오는 시간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운명의 장난, ‘불사조’가 된 절절한 사연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9월 29일 8회말 번트 수비에서 허리 통증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박철순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OB와 삼성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박철순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또 불사조 얘기하시려고? 이젠 그 얘긴 그만합시다”라며 웃어넘긴다. 허허로운 웃음 마디마디가 아리게 다가온다. 그 얘기를 다시 꺼내는 순간, 당시의 고통이 허리를 타고 다시 밀려오는 듯했다. 아무래도,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절절한 사연들이 숨어있기에.

 

박철순은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진통제 주사를 맞고 한국시리즈에 3차전부터 등판했다. 이듬해 2월 대만 스프링캠프 도중 허리 디스크 증세로 쓰러져 일본 병원으로 후송됐고, 오랜 재활 끝에 재기를 위해 1983년 9월 22일 MBC전에 등판했지만 하늘의 장난처럼 1회말 시작하자마자 송영운의 직선타구에 허리를 맞고 쓰려져 다시 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1984년 4월엔 미국 LA로 건너가 척추 디스크 수술을 했고, 머리카락이 다 빠진 채 휠체어를 타고 귀국한 그를 보고 모두들 ‘야구선수 박철순은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또 일어섰다. 1985년 8월 20일 청보전에서 승리하면서 1982년 9월 23일 해태전 승리 이후 1062일 만에 첫 승을 맛본 것. ‘박철순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해 9월 22일 대구에서 훈련을 하다 허리 부상이 재발했고, 1985년 5월 17일 대전 빙그레전 승리로 3차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1988년 속옷 CF 촬영 도중 새벽에 점프를 하는 장면을 찍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서 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1990년 7월 4일 잠실 해태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면서 부활했다. 훗날 한화 송진우에 의해 깨지긴 했지만 1994년 9월 4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역대 최고령(35세5개월) 완봉승 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쓰러지면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또 쓰러지는 운명의 장난. 그럼에도 그는 그 운명을 탓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를 두고 우리는 ‘불사조’라 불렀다.

 

『상처투성이의 몸과 영혼을 던진 이 곳에 내 유니폼을 던져두고 떠나는 날, 늘 걷던 담벼락에 이렇게 쓰면 어떨까. ‘운명아 비켜서라, 내가 간다’라고.』 (혼을 던지는 남자) 중.​ 

 

 

■ 이재국 기자는?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한국프로야구 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에 태어나게 된 건 하늘이 준 행운이자 운명”이라고 말하는 야구성애자.

 

전 월간베이스볼코리아~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 기자

 

전 한국야구기자회장, 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패널 

 

전 KB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패널

 

현 MBC스포츠+ (야구중심) 패널 및 KBO 상벌위원

 

 

■ 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할 100가지 이야기 = 베팬알백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자 기억의 스포츠다. 최초의 한국프로야구팀이자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 베어스의 역사와 기록은 물론 그 발자취 속에 간직된 우리의 추억과 눈물과 환호들을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베팬알백은 격주로 업로드된다. 두산을 아끼는 팬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를 약 2년에 걸쳐 생동감 있게 전달할 예정이다.​​ ​ ​ ​ ​